성수율(seongsuyul)

이어폰이 숨긴 소리

같은 노래, 같은 귀. 달랐던 건 공간뿐이었다. 이어폰이 한 장의 종이처럼 눌러 담았던 소리의 좌표를, 다시 입체로 펼쳐 놓는다.

납작하게 눌려 있는 소리.

우리는 매일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다. 요즘은 헤드폰이 귀 안에서 입체적으로 퍼지는 듯한 감각을 만들어주기도 한다. 하지만 그건 결국 기계가 고막 앞에 억지로 그려낸 가상의 공간이다. 아무리 정교해도 이어폰 안의 모든 소리는 좁은 평면 위에 한 덩어리로 눌려 있고, 우리는 늘 그 소리의 바깥에서 듣는다.

소리에 부피를 주는 공간.

성수동의 어두운 청음실에서 뉴진스의 OMG가 흘러나왔다. 수백 번은 들었던 곡이다. 그런데 이어폰 안 뭉쳐 있던 소리들이 제각각 자리를 찾아 공간 속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. 타악기를 두드리는 소리가 내 바로 앞을 스쳐 지나갔고, 코러스는 천장을 타고 흘렀으며, 보컬은 정면 무대 위에서 분명한 위치를 잡고 들려왔다. 소리가 형태를 가지고 실제 공간 속에서 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.

눌려 있던 소리의 세계를 펼쳐 놓다.

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을 때 우리는 눌린 소리의 평면을 바깥에서 구경하는 목격자다. 하지만 이 방에서 소리가 평면을 벗어나 부피를 가지는 순간, 나는 소리의 한가운데 앉은 참여자가 되어 있었다. 프로듀서는 애초에 곡을 만들 때 소리를 넓은 공간 위에 배치한다. 이 악기는 여기, 저 보컬은 저기. 하지만 이어폰은 그 공간을 한 장의 얇은 종이처럼 눌러버릴 뿐이다. 이 방은 소리를 바꾼 게 아니라, 눌려 있던 소리를 다시 펼쳐 놓은 것이다. 우리가 매일 듣는 음악 안에는,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소리가 아직 숨어 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