펜꾸
쓰라고 만든 펜을 돌렸다
기능적으로 완성된 물건에 굳이 무언가를 덧붙였다.
펜은 쓰라고 만들어졌다.

친구를 따라 펜을 하나 샀다. 1,400원짜리 플라스틱 볼펜. 공장에서 똑같이 찍혀 나오는 수많은 기성품 중 하나다. 잉크가 나오고 글씨가 잘 써진다. 기능적으로는 이미 완성되어 있다.
나는 쓰지 않고 돌렸다.

비즈를 고르고 펜 위에 끼워본다. 헐거우면 조잡해지고, 너무 꽉 끼면 돌아가지 않는다. 그 사이의 적당한 틈을 찾는다. 색을 고르고, 형태를 맞추고, 돌려보고, 다시 바꾼다. 처음엔 동그란 비즈를 이것저것 끼워보다가, 점차 화이트와 크롬이라는 나만의 조합으로 수렴해간다. 어릴 때 레고를 조립하고 바비인형에 옷을 입히던 것과 같은 집중이다.
"재밌다"가 설명하지 못하는 것.

다 만들고 나면 "재밌다"는 말이 나온다. 어른이 되면서 잊고 있었던 그 감각이다. 내가 고르고, 내가 조합하고, 내가 완성하는. 1,400원짜리 펜 하나가 그 원초적인 놀이의 시간을 다시 꺼내줬다. 폰꾸나 백꾸도 아마 비슷할 것이다. 이 펜도 잘 써진다. 하지만 글을 쓸 때는 다른 펜을 꺼낸다. 이 펜은 그저 돌린다.